선천 봄여름에는 천체가 기울어져서 하늘과 땅의 관계가 삼천양지(三天兩地)로 되어 있다. 즉, 양(陽)인 하늘은 셋이고, 음(陰)인 땅은 둘이라고 하는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지축을 중심으로 양기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자연의 불균형 부조화, 음보다 양이 훨씬 강한 천지의 구조 속에서 상극의 운(運)이 조성된다. 2편 17장 성구 말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가 바로 이‘상극(相克)’이다. 상극은 다소 신비주의적인 맛이 깊고, 또 고도의 철학성이 잠복된 언어다. 또 원리적으로는 이해하기 매우 쉽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우리 몸에서, 영적 차원에서 심오하게 깨치기는 무척 어려운 고도의 추상적인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원리적으로 상극의 현상을 이해를 할 때는 서로 상(相) 자 이길 극(克) 자, ‘두 사물 사이에 서로 극한다’는 의미로, 본래 뜻은 한쪽이 상대를 물리친다, 제압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1절의‘선천은 상극의 운이라’는 말씀은 순수한 자연의 봄여름의 법칙, 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상극을 말씀하신 것으로, 영어로는 조정한다, 제어한다는 의미인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상극은 투쟁 전쟁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음양(陰陽)의 상극으로‘서로를 제어한다’는 의미다. 이 극의 이치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균형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음과 양 상호간의 작용을 조정 제어하는 조화의 법칙이 된다.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하지만 하늘과 땅위에 살고 있는 인간과 천상의 신명들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위를 하고, 또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 상극의 이법적 환경속에서는 그 상극 기운의 영향을 받아 주먹질하고 전쟁을 하는 등 상호투쟁을 하게 된다. 문명 속에서 일어나는 이 때의 상극은 영어로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로 번역을 해야 맞다. 이렇게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이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인간의 문명속에서 상극을 쓸 때는,‘ 정말로 극이 너무 많아’‘장애가 너무 많아’‘넘어서야 될 장벽이 너무 많아’라는 의미로 쓸 때는, 인간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비극과 수많은 재앙들, 자연재해,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는 교통사고, 수많은 인간들끼리의 분쟁과 같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적 원인으로서 상극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순, 갈등, 죄악, 전쟁,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이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 속에 서교의 원죄(原罪) 문제,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무명(無明)과 업장의 문제가 다 들어간다. 선천문화권에서 인간론에 대해 언급한 숱한 문제들이‘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았다’는 그 한마디 상제님 말씀으로 다 풀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앞의 2절에서의‘상극의 이치’란 자연의 이법으로서 하늘땅이 만물을 다스리고 길러내는 생성, 창조의 법칙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길러내므로 인간의 역사, 문명속에서는 이 상극이 하루도 싸움 그칠 날 없는 비극적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 선천의 상극의 이법이 인간 역사속에서는 상쟁(相爭)이 돼서 피비린내 나는 상호투쟁, 대결, 생사를 판가름 짓는 전쟁 전란으로 화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웠고, 어찌할 수 없는 상극의 자연이법, 상극의 운수로 인해 선천의 모든 인간과 만물은 원한을 맺고 사는 상극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다시 한 번 간략히 정리하면, 1절 말씀은 순수한 천리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2절은 이‘상극의 이치, 천리가 인간과 만물에 작용해서 역사 속에서 전쟁이 그칠 날 없었다’고 해서, 선천 천도의 상극이 인간의 삶, 역사, 문명속에서 전쟁, 죽음을 불러오는 그런 문명적 상극으로 드러나고, 3절은 더욱 강조하여 그상극의 운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워왔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이 4절에서는 자연과 문명의 상극을 동시에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선천역사가 종극점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의 오랜 삶 속에서 이뤄졌던 순수 천리 상극과, 인간의 역사속에서 생사를 가늠질했던 이 상극 - 즉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과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라는 두가지 의미의 상극 - 을 끝맺으려 하니 큰 화액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린다.’선천 상극의 이법에 의해서 태어나고 살아온 인간의 원한이 천지에 충만해서, 그 원한이 터져 나오면 전 인류가 비극적으로 다 죽게 된다는 말씀이다. 추살기운으로 오는 병겁도 상극기운이 배경이 되어서 선천 원한이 폭발하는 것이다. 상극의 천리가 인사로는 원한으로 맺히기 때문에, 인간역사의 뿌리깊은 원한의 갈등은 인간의 도덕적 교화만으로는 전혀 풀릴 수 없는 문제다. 그 깊은 골을 상제님께서 신천지 조화법으로 끌러내신 게 바로 천지공사다. 상제님은 자연의 상극을 상생으로, 인사(人事)의 원한을 해원의 역사로 바로 잡아 주시고 천지의 기틀을 근원으로 되돌리셨다.
앞 세상이 얼마나 살기가 좋으냐 하면, 말 그대로 지상선경(地上仙境)이 된다. ‘산무도적(山無盜賊)하고 야불습유(野不拾遺)라’,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흘린 것을 주워가는 자가 없다. 그때는 먹을 것도 풍부하고 입을 것도 풍부해서 의식(衣食) 걱정을 하지 않고 산다.
물론 지금도 물질문명이 극치로 발달을 해서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첨단 과학 문명이기인 컴퓨터도 사실 참 굉장한 것이다. 컴퓨터 단추 하나만 누르면 금세 세계정보가 수집이 되고 모든 것을 나름대로 다 알 수가 있다. 또 지금 우리나라에 휴대폰을 하나씩 안 가진 사람이 없다. 휴대폰은 위성과 직결을 해서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사람이 위성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이 물질문화라 하는 것은 일방적인 문화, 반쪽 문화다. 물질문화는 타에 의존을 하는 문화다. 내가 그 문명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가. 또 휴대폰이 없으면 정보를 교환할 수가 없지 않은가.
반면에 정신문화라는 것도 있다. 물질문화는 형상이 있는 유형의 문화이고 정신문화는 형상이 없는 무형의 문화이다. 진짜로 통일된 문화, 결실문화, 알캥이 문화라 할 것 같으면 유형과 무형이 합치된 문화이다. 정신문명이 곁들여져야 완성된 문화인 것이다. 사람도 육신만 갖고서 100%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정신, 영체가 없는 육신은 목석과도 같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사람은 신명, 영신이 붙어있는 것이다.
육신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집이요, 심부름꾼이다. 육신은 심령이 어디를 가자 하면 가야 되고, 심령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심야자(心也者)는 일신지주(一身之主)라. 마음, 심령이라 하는 것은 한 몸뚱이의 주인이다. 내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내 심령이다. 여기 앉았는 사람들도 심령의 지배를 받아서, 자기의 영체, 자기 정신의 지배를 받아서 몸뚱이가 여기 와서 앉아있는 것이다.
앞으로 인류 문화의 극치인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열린다. 일만 만 자, 일 사 자, 알 지 자, 만사를 아는 문화. 우주정신의 목적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낮에는 사람이 활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듯이, 봄여름은 사람이 주체가 되고 가을겨울은 신명이 주체가 되는 때다. 가을철 신명세계를 맞이해서 신인(神人)이 합일(合一), 신명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신명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은 신명을 만나서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하고 불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해서 배우지 않고도 문장이 되고, 점치지 않아도 세상만사를 다 안다. 인인(人人)이 성신(聖神)이라, 사람마다 다 도통을 해서 환하게 알아버린다. 백성도 다 자기 노릇할 만한 도통을 한다. 각자 자기가 닦은 바에 따라서 도통을 하게 된다. 그게 뭐와 같으냐 하면, 가을철이 되면 모든 초목이, 저 이름 없는 조그만 풀까지도 씨를 여무는 것과 같다. 20 프로 여무는 놈도 있고, 50 프로 여무는 놈도 있고, 70 프로 여무는 놈도 있잖은가. 지금은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것을 갖고서 단추를 눌러야 알게 되지만, 그 세상에는 스스로 다 알아버려서 그런 것이 필요가 없어진다. 또 마음속으로 조금이라도 남에게 해를 붙인다든지, 미워한다든지, 잡생각을 가지면 사람들이 금세 다 알아버린다. 그래서 그 세상에는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또 할 필요도 없다. 그런 좋은 세상이다. 모든 것이 다 풍부하고 살기 좋으니 지상선경이요, 또한 조화선경, 현실선경이다. 그런 세상이 후천 오만 년을 간다. 어떻게 해서 오만 년이냐 하면, 한로, 상강, 이렇게 해서 서릿발 치고 눈이 오면 모든 초목이 다 말라서 낙엽이 떨어지고 추워서 다 동결되어 일체 생물이 멸망당하듯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시기까지 오만 년이 남았다.
지금은 원시로 반본하는 때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도 제 근본, 제 뿌리, 제 조상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고사(枯死)해 버린다. 제 뿌리가 끊어지는데 무슨 재주로 사는 수가 있나?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은 제 뿌리가 있음으로써 자신도 있는 것이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다. 여기 앉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몸이란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 왜 그러냐면 자기 자신이 있음으로써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사회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없을 것 같으면 아무것도 없잖은가. 그러면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몸을 내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자기 조상이다. 자기 조상이 없으면 자기가 어디서 생겨났나? 천 년 전, 2천 년 전, 3천 년 전, 5천 년 전, 만 년 전 조상 할아버지가 있어서, 유전인자를 계계승승 자기 몸에까지 전해줘서 자기 자신이 생겨났다. 자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뿌리 없이, 씨종자 없이 어디서 생겨났는가? 그래서 상제님이 “나를 만나기 이전에, 나를 찾기 이전에 각자의 자기 조상부터 찾아라.” 하신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도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효도라 하는 것은 일백 행실의 근본이다. 바탕이 된다 하는 말도 있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국가에 충성을 하는 법이 없다. 제 어미 애비에게도 불효하는 사람이 국가를 알 수가 있나?
‘낙엽(落葉)이 귀근(歸根)이라’, 모든 초목이 가을철이 되면 열매만 남고, 이파리는 다 떨어지고 그 이파리에 공급되던 진액은 전부 뿌리로 되돌아간다. 아주 조그만 잔디서부터 몇 십 길 되는 커다란 나무까지도 다 똑같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100대 조 할아버지건, 200대 조 할아버지건 처음 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 백대 조 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99대 조 할아버지에게 전해졌고 그렇게 98대조, 97대조, 96대조, 95대조로 전지자손(傳之子孫)해서 유전인자가 지금의 나에게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그 유전인자는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은 바로 자기의 처음 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아서 태어났다, 이렇게 알면 아주 더도 덜도 없다. 알기 쉬웁게, 밥 할 때 맛있으라고 넣는 밤콩이라는 것이 있다. 검정밤콩이 있고 대추밤콩이 있는데 물에다 불려서 꺼풀을 벗겨보면 밀용지처럼 아주 얇다랗다. 헌데 그것은 절대로 바꿔지지를 않는다. 검정밤콩이 대추밤콩으로 되어지지 않고, 대추밤콩이 검정밤콩으로 되어지지도 않는다. 유전인자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씨가 어떻게 바꾸어지나. 봄철에 콩 하나를 심어놓으면 여름철 내내 커서, 가을철에 가서는 뿌리의 진액, 마디의 진액, 이파리의 진액, 줄거리의 진액을 전부 다 뽑아 모아서 다시 자기와 똑같은 콩 알캥이를 맺어놓는다. 만유의 생명체가 가을이 되면 다 그렇게 제 모습을 찾는다. 그러니 이번에는 사람도 제 조상을 배반하고 제 조상을 바꾸는 사람, 환부역조(換父易祖)하고 환골(換骨)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하추교역기는 천지 대자연 섭리의 틀이 바꿔지는 때이므로 이 길을 찾지 못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앞에서도 말을 했듯이 천지의 이법은 춘생추살이다. 우주년도 그렇고, 지구년도 그렇고 봄철에는 내는 주장만 하고 가을철에는 죽이는 정사만 한다. 봄철에는 내고, 가을철에는 죽이고, 그것밖에 없다. 그걸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대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써는 절대 거역할 수가 없다. 만유의 생명체는 다만 대자연섭리에 의해서 생멸을 할 뿐이다! 생겨나고 소멸 당하고. 그러니 차한(此限)에 부재(不在)라, 이 길을 찾지 못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미륵이 오신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유가 도가에서 옥황상제님이 오신다고 얘기를 한 것이다. 이번에는 여기를 찾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세상만사라 하는 것은 다 생연후사(生然後事), 살고 난 다음 얘기 아닌가. 아니 죽어서 몸뚱이가 없는데 천하가 다 내 것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사람 뚜겁을 쓰고 온 사람 쳐놓고서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기 나름대로 다 부귀영화를 탐내다가 갔다. 만유의 생명체가 다 똑같다. 이번에는 내 삶과 더불어 오만 년 부귀영화가 바로 미륵님, 아버지 하나님, 옥황상제님에게 있다. 그 속에 다 들어있다. 그러니 미륵님을 좇아야 되고,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옥황상제님을 찾아야 한다. 기존 문화권 성자들이 말한, 이 지구상에 오신 그 분이 누구냐? 그분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신도들이 신앙하는 바로 그 증산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이 미륵님이요 아버지 하나님이요 옥황상제님이시다.